빅데이터는 21세기 디지털 경제의 핵심 자산으로 부상했다. 통신사는 막대한 양의 사용자 데이터를 확보한 주요 주체로서 빅데이터 기반 서비스 개발과 광고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데이터 활용이 고객의 프라이버시와 충돌할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이해 상충' 문제가 제기된다. 본 글에서는 통신사가 데이터를 수익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윤리적, 법적 갈등이 발생하는지, 그리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심층적으로 다뤄본다.
빅데이터 시대, 통신사의 역할은 정보 관리자일까 수익 창출자일까
오늘날 빅데이터는 단순한 기술 개념을 넘어, 사회 전반의 의사결정과 경제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 이 가운데 통신사는 국민 대다수의 실시간 데이터 흐름을 가장 밀접하게 다루는 사업자로서, 이 자원의 보고(寶庫)라 불릴 만한 위치에 있다. 스마트폰을 통한 통신, 위치 정보, 메시지, 웹사이트 접속 기록 등 방대한 정보가 통신사 네트워크를 통해 이동하고 저장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한 통신사는 이를 활용하여 다양한 신규 사업 모델을 개발하고 있으며, 특히 광고 및 분석 서비스, 이동성 기반 플랫폼 사업, 정부나 지자체와의 데이터 협업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이러한 활용이 언제나 ‘합리적이고 정당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바로 데이터 활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 상충’이다. 통신사는 고객의 데이터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동시에, 그 데이터를 수익화하려는 기업적 동기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중적 역할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딜레마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 통신 업계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문제다. 특히 사용자의 명확한 동의 없이 데이터가 비식별화되어 분석에 활용되거나, 제3자에게 판매되는 사례는 끊임없는 논란을 야기해왔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서비스 품질 향상’이나 ‘공익적 연구 목적’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일상이 무단으로 기록되고 있다는 불쾌감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데이터 활용은 공공기관과의 협업, 민간 기업과의 마케팅 제휴 등 여러 방식으로 확장되면서 더욱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 과연 통신사는 고객의 정보를 관리하는 ‘정보 수탁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제는 데이터를 활용해 부가 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완전히 변모한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철학적인 고민이 아니라, 실제 사용자 권리와 직결된 매우 현실적인 문제이며, 오늘날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및 데이터 주권 논의의 핵심 주제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이해 상충의 구체적 양상과 제도적 공백
통신사의 빅데이터 활용이 불러오는 이해 상충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드러난다. 첫째는 **동의 없는 데이터 활용**, 둘째는 **데이터의 상업적 재판매**, 셋째는 **책임 회피 구조의 고착화**다. 먼저, 다수 통신사는 약관과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통해 빅데이터 분석을 위한 정보 수집 및 사용에 대해 명시하고 있으나, 이 내용은 대부분 전문 용어로 장황하게 작성되어 있어 일반 사용자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사용자는 실질적으로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어디까지 활용되는지를 알 수 없으며, '형식적 동의'만으로 광범위한 데이터 사용이 정당화된다. 둘째, 통신사는 광고주, 유관 산업군, 지방자치단체, 학계 등에 데이터를 ‘분석 결과’ 형태로 제공하는 사업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비식별화됐다는 이유로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운 듯하지만, 최근 여러 연구에서는 비식별 정보도 복합 분석을 통해 재식별이 가능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통신사의 상업적 데이터 판매는 사용자의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셋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 데이터 유출 사고나 비정상적 광고 노출이 발생해도, 통신사는 "해당 데이터는 익명화 처리되었으며, 개인정보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법적 기준 자체가 데이터 수익화 행위를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고 있어 제재 수단도 부족하다.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은 사용자의 권리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데이터 경제’ 전반을 조율할 수 있는 구조적 프레임은 미흡하다. 특히 빅데이터를 중심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의 역할과 한계를 명확히 규정한 법제는 사실상 부재하며, 자율규제 중심의 허술한 구조 속에 소비자 권리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 결과, 통신사는 '고객 보호자'라는 본래의 정체성과 '빅데이터 플랫폼'이라는 기업 전략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충돌하며, 양쪽 역할 모두에서 신뢰를 잃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구조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미래에는 통신 서비스에 대한 신뢰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신뢰 회복을 위한 데이터 거버넌스의 재정립
이제 통신사가 진정한 공공성과 기업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빅데이터 활용과 고객 보호 사이의 균형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데이터 거버넌스의 재설계**다. 첫째, 사용자의 ‘실질적 동의’ 시스템 구축이 요구된다. 단순히 약관에 포함된 문구가 아니라, 데이터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어디까지 사용되는지를 시각화하고,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EU의 GDPR처럼 데이터 처리에 대한 투명성과 통제 가능성을 보장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둘째, 데이터 수익화와 관련한 기업 활동을 외부 기관이 감독하고 평가하는 **독립적 감시체계**가 필요하다. 이 감시체는 단순히 법 위반 여부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활용의 윤리성, 사회적 타당성, 소비자 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셋째, 기업 내부의 데이터 처리 문화도 개선되어야 한다. CSR 보고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데이터 관리 부서와 마케팅 부서, 법무팀 간의 연동이 강화되어야 하며, 사용자의 데이터가 상업화되는 순간마다 내부 검토가 이뤄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넷째, 사회 전체적으로 데이터 주권에 대한 교육과 인식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통신사는 사용자와의 신뢰를 기반으로 존재하는 기업이다. 고객의 데이터를 수익의 도구로만 보는 인식을 버리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는 고객의 이탈과 신뢰 하락이라는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결국, 빅데이터의 힘은 그 데이터를 수집한 주체가 아니라, 그것을 신뢰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통신사는 데이터 시대의 중심에서 기술과 윤리, 수익과 신뢰의 균형을 책임 있게 조율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위한 첫걸음은 이해 상충을 인정하고 이를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