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SK텔레콤 해킹 사태를 계기로 통신사의 보안 성능 공시 필요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재 한국 통신 3사는 요금, 속도, 부가 서비스 등에 대해 비교적 투명하게 공시하고 있으나, 가장 민감하고 핵심적인 보안 항목은 공시 대상에서 빠져 있다. 이는 단순히 정보 누락 차원을 넘어,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기업의 책임 회피를 가능케 하는 구조적 결함이라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왜 통신사의 보안 수준이 공시되어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제도화되어야 하는지를 제안한다.
속도는 공개하면서 보안은 왜 감추는가?
한국의 통신 3사(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다양한 서비스 항목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공시 자료를 제공한다. 요금제 구성, 데이터 용량, 속도 비교, 부가 혜택 등은 홈페이지나 홍보 채널을 통해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회사의 보안 시스템은 안전한가?’, ‘최근 해킹 사고 이력은 어떻게 되는가?’, ‘개인정보 보호 조치는 어떠한 수준인가?’ 같은 질문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다. 2025년 발생한 SKT 해킹 사건은 이러한 공백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아무리 빠르고 저렴한 통신이라도, 사용자 정보가 유출되면 그 모든 혜택은 무용지물이 된다. 기업의 기술적 성능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사용자의 신뢰와 안전**이다. 그런데 현재의 공시 제도는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통신 서비스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국민 생활의 기반이며, 개인정보와 금융 정보까지 연결된 **사회적 인프라**이다. 보안 정보가 공시되지 않으면, 소비자는 자신이 이용하는 통신사가 어느 수준의 보안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없다. 이는 소비자 권리 침해이며, 동시에 기업에게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수단도 사라지게 된다. 지금까지 ‘싸고 빠른’ 통신이 마케팅의 핵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통신’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바로 **보안 성능의 공시 제도화**다.
통신사 보안 성능 공시가 필요한 5가지 이유
1. 보안은 사용자 인권의 문제
보안은 단지 기술력이 아니라, **사용자의 프라이버시, 명예, 재산**을 지키는 기본 인권이다. 통신사가 어떤 보안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 모른 채 서비스를 선택하게 되는 구조는, 개인의 권리 보호를 심각하게 저해한다. 공시제도를 통해 사용자는 자신의 정보를 어떤 환경에 맡기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2. 선택 기준의 불균형 해소
현재 소비자는 요금, 속도, 용량만을 기준으로 통신사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용자들은 ‘보안 사고 이력’, ‘이중 인증 도입 여부’, ‘사고 대응 속도’ 같은 정보도 알고 싶어 한다. 공시제도를 개편하면, 기업은 신뢰 기반 경쟁을 유도받게 되고, 소비자는 더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3. 기업에 책임감을 부여하는 제도
보안 수준을 수치화하고 정기적으로 공시하게 되면, 기업은 스스로의 관리 역량을 수치로 드러내야 한다. 이는 사후 해명보다 강력한 예방 수단이 될 수 있으며, 보안 투자에 대한 동기를 제공하게 된다. 명확한 기준 아래에서 사고 발생 시 책임을 묻는 구조가 성립된다. 4. 글로벌 기준과의 정합성
유럽연합의 GDPR, 미국의 CCPA는 기업이 수집하는 고객 정보에 대해 구체적인 사용 목적과 보호 방식, 유출 시 대응을 명시적으로 설명하도록 요구한다. 한국도 ICT 강국이라면 이 같은 기준을 수용해야 하며, 통신사는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속도와 요금만 공개하는 시대는 지났다. 5. 사고 예방을 위한 실질적 도구
정기적이고 투명한 보안 공시는 단순한 자료 공개가 아니라, 기업 내부의 보안 점검을 유도하는 촉진제가 될 수 있다. 외부 감사, 해킹 대응력, 기술 시스템 도입 현황 등을 체계적으로 공개함으로써 **사고 이전 단계에서의 관리 수준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신뢰의 통신’을 위한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통신은 국민 생활과 직결된 핵심 인프라다. 단순히 인터넷 속도나 요금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그 위에 담기는 **개인정보, 금융 정보, 위치 데이터, 통화 내용** 등이 모두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통신사의 보안 수준은 공공적 기준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SKT 해킹 사태는 이러한 경고를 분명히 전했다. 그런데도 보안은 여전히 ‘기업 내부 정보’로 취급되며,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정보보호를 ‘신뢰 기반’에 맡길 수 없다. 이제는 ‘투명성 기반’, ‘책임 기반’의 구조로 전환되어야 하며, 그 중심에는 **보안 공시제도 도입**이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통신사별로 공시되어야 한다: - 최근 3년간 보안 사고 이력 - 침입 탐지 및 차단 시스템 운영 여부 - 이중 인증, VPN, 정보 암호화 도입 현황 - 해킹 탐지 및 복구까지의 평균 소요 시간 - 연간 보안 점검 횟수 및 외부 감사 결과 이런 정보를 표준화된 형태로 제공받을 수 있다면, 소비자는 안전한 선택을 할 수 있고, 기업은 자율적인 책임감을 갖게 된다. 통신사가 ‘싸고 빠르다’는 말만으로 선택받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신뢰할 수 있는 통신’**, **‘정보를 지켜주는 기업’**이 선택받아야 한다. 공시 항목은 소비자의 눈이며, 기업의 양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