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KT 해킹 사건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닌 정보 신뢰의 붕괴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통신사 선택에서 가격, 속도 외에 보안 수준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보안 등급제’ 도입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보안 등급제가 왜 소비자 권리를 위한 제도인지, 실제로 어떤 요소들이 평가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를 분석하고, 제도 도입이 사회 전반에 가져올 변화 가능성을 전망한다. 통신 시장에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신뢰다.
통신사 선택, 왜 아직도 보안은 빠져 있는가?
한국의 통신 시장은 치열한 경쟁 속에 요금제, 속도, 데이터 제공량 등의 항목을 중심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유도하고 있다. 광고와 공시 제도는 여전히 "더 빠른", "더 많은"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한다. 그러나 2025년 SK텔레콤 해킹 사태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일깨웠다. 아무리 빠르고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보안이 무너지면 모든 통신 서비스는 무의미해진다**는 점이다. 문제는 현재 통신사 보안 수준에 대한 공식적인 비교나 평가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소비자는 각 통신사의 보안 수준이 어떤지, 어떤 사고가 있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데이터를 보호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구조가 전무하다. 정부 또한 이에 대한 감시 체계나 공시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정보 비대칭은 결국 소비자를 무방비 상태로 만들고,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기업은 ‘몰랐다’며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이제는 통신사의 마케팅 경쟁을 넘어, 신뢰 경쟁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보안 등급제’라는 객관적이고 표준화된 지표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단지 보안 기능의 유무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서, 기업이 보안에 대한 철학과 투자, 실행력을 소비자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본 글에서는 이 제도의 필요성과 구체적 방향성에 대해 살펴본다.
보안등급제, 소비자와 사회를 위한 제도
1. 투명성 확보를 통한 신뢰 회복
보안 등급제의 가장 큰 기능은 통신사들이 ‘보안 관리 수준’을 공정하게 평가받고, 그 결과를 소비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게 하는 데 있다. 이는 단지 등급 표시가 아니라, 기업의 **투자 태도와 책임 의식의 가시화**다. 예를 들어, A통신사가 연 2회 외부 보안 감사를 받고 최신 침입탐지 시스템을 운영한다면, 이는 등급 평가에서 가산 요소가 되어야 한다.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
요금제, 커버리지, 부가 서비스는 이미 비교 플랫폼이 풍부하다. 반면 보안은 “기본”이라며 애매하게 넘어가고 있다. 하지만 실제 보안 사고는 기업마다 이력과 대응력에 큰 차이가 있다. 보안 등급제는 소비자에게 ‘요금이 싼 대신 보안 리스크가 큰’ 혹은 ‘요금이 비싸지만 보안이 철저한’ 구조를 명확히 비교할 수 있는 정보 도구가 될 수 있다. 기업의 선제적 투자 유도
보안 등급이 공개되면, 그 자체가 시장의 평가 기준이 된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등급 유지를 위해 지속적인 보안 예산 투입, 내부 시스템 강화, 사고 대응 체계 정비 등을 자발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등급이 떨어지면 이미지와 수익에 타격을 입는 만큼, 이는 강력한 유인책이 될 수 있다. 제도 도입 시 고려해야 할 요소
등급제를 도입한다면 단순한 체크리스트가 아닌, 실질적인 항목이 포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 3년간 보안 사고 발생 이력 외부 감사 주기 및 보고서 공개 여부 데이터 암호화 방식 및 이중 인증 체계 소비자 대응 프로토콜 피해자 보상 절차 및 기한 이러한 내용을 기반으로 등급을 A~D 등으로 나누어 공개한다면, 소비자의 이해도도 높아진다.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역할 필요
방송통신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관련 기관은 이 제도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표준화된 평가 체계와 정기 공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민간에서 등급을 평가하면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으므로, 최소한 초기에는 국가 기관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속도’보다 ‘신뢰’로 선택할 시간
통신사 선택에서 ‘보안’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항목이다. 그러나 정보 사회가 심화되고, 통신망이 곧 금융, 행정, 보건 등 핵심 인프라의 기반이 되어가는 지금, **보안은 서비스 품질의 핵심 지표로 격상되어야 한다.** 단지 속도와 요금, 브랜드 이미지가 아니라, ‘나의 데이터가 안전한가?’라는 질문이 소비자의 선택 기준이 되어야 한다. 보안 등급제가 도입되면 통신사들은 더 이상 보안을 기업 내부의 ‘마케팅 수단’으로만 다룰 수 없다. 그것은 시장에서 평가받는 공공성과 책임성의 기준이 되며, 소비자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맞는 통신사를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기업이 보안 등급을 올리기 위해 투자하고, 정부가 기준을 명확히 하고, 시민이 감시하는 구조가 형성되면, 통신 생태계 전반의 보안 의식도 한 단계 도약하게 될 것이다. 신뢰는 공짜가 아니다. 보안 등급제를 통해 우리는 그 신뢰를 공정하게 사고팔 수 있는 시대를 만들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첫 단계를 밟아야 할 때다.